저 뒷산에서 우린 어린시절을 구르며 보냈다.
지금은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 몇그루 자라고 있고,커다란 무덤 몇기가 있던 그곳은 늘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키작은 소나무에 올라 말을 타기도 했고,솔방울을 줍거나,눈이 내린날은 비료포대를 타고 한나절을 짧게 보냈었다
타르가 묻어나던 나무전봇대는 이제 보기 드문 골동의 시설물이 되었지만,나무전봇대아래를 일궈 푸성귀를 가꾸던 아낙들이
할매되어 살다 이젠 그들의 바지런한 손을 잡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부지런하기로는 따르지 못할 양씨내외는 올빼미 스타일의 내삶은 뒤흔들만큼 그들은 새벽에 저 손바닥만한 텃밭을 일구느라 삽질과 곡괭이질을 멎지 않았다
봄이면,독한 닭똥거름을 내턱앞에 퍼부었고,개옻나무라 부르는 엄나무를 봉창아래 심어두어 가시가 무자비한 그 나뭇가지는 어설프게 선 안테나를 절단 내었지만
이웃의 일이라 따져볼 요량마저 갖지 못했다.
봄날의 새순을 따러 시끌시끌하던 아침.난 그 내외들 몰래 독한 엄나무 뿌리가 두려워 마른 잎을 긁어모아 불을 지르기도 했건만
엄마의 말씀처럼 구들장이라도 뚫고 들 기세로 잘 자라던 엄나무를 무슨마음으로 였는지 베어내고 없었다
하지만,굳센 엄나무의 2세들은 여전히 새로이 자라나고 있었고,피부암에 걸려 기력을 잃어가던 양씨아저씨는 일흔이 훨씬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고 이젠 되려
기력이 더 굳세어지셨고,참새처럼 재재거리던 아줌마는 검불처럼 말라가고 있어 훅 날아가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동네 어른들을 만나는 일이 달갑잖을만큼 나고자란 곳에서 기억은 어릴적의 가난이 이룬 추억일뿐 철들무렵부터 지난한 내삶을 그곳에 묻고 물러난 자리라
늘 포복으로 들고 나는 느낌이라,옛집의 안부는 무겁다.
친구의 아버지는 딸사랑이 유난한 분이셨는데,인생의 곡절을 겪은 친구는 아비의 그런 사랑을 다 기억하는지 세상이 좋아져 아버지 상을 당하고도 기다란 인조눈썹을 달고 나타난 딸이며,그분의 손녀의 해사한 화장은 세상이 변화한 것인지 그럼에도 지켜야 할 무언가를 놓아버린 것은 아닌지 좀 의아했었다.
한꺼번에 누눈가의 동력으로 이동했을 동네 어른들을 상가에서 단체로 뵙고 어물쩡 물러나왔던 지난주의 일이 허망하다.
어렵게 이주했던 분들이 이제는 번듯한 집을 가지고,한결같은 성실함으로 이어가던 삶이 이제 정리되는가보다.
빈집은 늘고,후손은 부모님의 집에 살지 않는데,유독 흥망성쇠를 이어가는 서씨의 후손은 땅은 늘려 집을 세우느라 뒤란의 대숲을 없애고 뒷밭을 후벼내고 옹벽을 치느라
연신 마을에 시비를 해댄다고 소식을 듣는다.나와도 좋지 못한 감정을 남겼던 인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