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와
더운 소나기가 지나던 밤이 이제 언제였던가 싶게 오늘은 바람이 하도 시원해 날개가 돋힌듯 양팔을 벌려 바람을 느껴본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이불을 끌어당겼고,이리저리 몸을 웅크리게 되니 선선하다 못해 산득하다 싶은 기온이 느껴지는 것이다.변심한 애인이라고 계절의 변화는 이렇듯 매번 느닷없는 것이라고 웃으며 이야기 하는데,편의점 아낙은 내 말에 더 크게 웃는다.내 취약점이라면,남의 일에 너무 깊이 개입하려 든다는 것.눈 질끈 감고 모른척 하고 살아 편할텐데
보나마나 전작이 있어 술이 취했을 그녀가 보내온 문자를 무시하지 못해 저녁에 만든 반찬을 챙겨 나섰다가
이미 걸음이 시원찮게 취해있는 그녀를 부축하여 집으로 바래다 주고,반찬도 전했다
꼭 이젠 그런 병적인 의무감 따위를 벗어나야겠구나 싶던 내게 한 사람이 자릴 비끼면 또다른 누군가가 그자릴 채우곤 한다
젊은 그녀를 보면,말년에 내 언니를 보듯 마음이 안좋아서 술을 줄여라 담배를 끊어라.밥은 그래도 챙겨먹어야 한다는둥
하나마나인 소릴 해대고 있다
이미 반이상 정신이 나가버린 그녀 앞에 독백하듯 지껄이다가 거물거물 졸고 있는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 주면서
우리의 묘한 인연을 생각한다
열정을 잃은 원장과 엉망의 학원을 내가 떠안다시피 하는 일도 힘겨워 이제 인연도 학원도 다 끝내야 겠다 생각하고는 물러서는 내 옷자락을 놓지 않던 그녀가 애처롭고 안쓰러웠지만 습관이 잘못든 그녀에게 내가 취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월급이 밀리고,자칫 내돈을 빌려줘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이어지고..여전히 그녀는 입담 좋고
잘 취하고,비틀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