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썼는가?
거의 반생을 엄마와 살다가,오랜 간병기를 마치고 경단녀(경력단절녀,세상에는 이런말도 있었단다)가되어 세상으로 나갔더니만,간첩수준이 되어 바뀐 것들을 익혀야 했다
그리고,무엇보다 내가 날 벌어먹여야 했으니,대체 무얼 할 수 있었나 싶다
전화기를 가진 것이 그때부터였고,조그만 폴더폰을 언니네 아이들이 내게 주었을 때 너무 신기해서 대체 말을 어디다 대고 해야는지,배터리를 갈고는 전화가 켜지지 않아 고장인줄 알았던 엉터리 배터리를 갈아끼우고는 전원을 다시 켜야하는 것도 익혀야 했다
지금도 달라진게 별로 없지만,통신요금 엄청 아까워서 요금을 아끼느라 거의 기본문자만 하면서 받는 용도로만 쓰던 전화기가 나도 이젠 비록 후지긴 해도 스마트폰을 쓰게 되었으니 인터넷검색이며 그런 걸 전화기로도 하게 되고
처음 공공근로를 하느라,복지회관의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조직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다보니 별 인성을 지닌 사람이 많았고,과도한 스트레스는 견디기 힘들었다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던 시절.그때부터 네티즌이라 이르고,다음회원가입을 하고 그당시엔 플로넷이라는 지금의 티스토리 시초였을 그런 것을 시작하여 이런저런 그날의 일기 같은 것을 시작했었다
말 안되게 구는 어떤 여인을 성토하는 일기부터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지독한 힘겨움을 토로했던 공간이었다
그당시에는 사진을 올리거나 하는 기능을 몰랐고,스마트폰도 없고,다만,어렵사리 장만했던 디지털카메라가 있어도 카메라 저장 사진을 업로드 할줄도 몰랐다
컴퓨터를 배운 적이 없으니 뭐든ㅡ이것저것 집적대며 시도하면서 하다보니 엉망이고 재미도 시들했다
그리고,네이버로 갈아타며 블로그를 개설하고 엄청 최적화된 네이버를 잘 썼다
별 다를 것도 없는 글들이 다양한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수천편을 써댔다.용케 광고도 붙여주고 천명이 넘는 이웃도 얻고
방문자도 백명이 넘어설 무렵,해킹이란 엄청난 걸 겪으며 모든 것을 잃었다
광고 뭐 방문자 이런건 문제가 아녔다
내 기록들이 다 사라진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누군가 끊임없이 내 아이디로 로그인 한다는 메일을 받고,그때 바로 이중 보안을 실천했더라면 지금처럼은 아니었을 것인데,안일하게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는 차단 할 생각을 못했다
기분이 참 이상했던 21년8월14일 하필 그 다음날이 공휴일과 주말로 이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많은 사진이며 메일,친구들에게 보냈던 메일을 다 저장하고 있었는데,블로그의 글이야 자꾸 쓰면 또 이어지겠지만,그당시의 느낌과 신명이 다르고,지금이 다르니 점점 시들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다,다음카카오로 이어지면서 카카오로 이전하라는 메일을 여러번 받고서야 겨우 티스토리로 와 다시 이런저런 말 안되는 글들을 올리고 있지만,일상의 기록증정도 일뿐 방문자를 바라거나 하는 목적은 없다
그럼에도 최근 비단장수왕서방님이 진중한 댓글을 하시면서 다음에서 방문자가 급증하는 기현상도 있기는 했다
비단왕님은 팬덤이 있는모양인지...별 내용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같은 글을 읽어주신것만도 감사한데..
무엇이든,시작하면 성실한 것 꾸준한 것이 내 고집 같은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초등때부터 써 온 일기를 지금까지 중고교이후엔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있다.간병하던 시기가 오래여서 거의 엄마와 둘이 지내면서 내 개인의 사고는 없이 엄마에 대한 내느낌만을 기록하다보니 따로 간병일기를 쓰기도 했다
지금은 다양하게 누군가와 소통 할 수 있는 사이버상의 공간이 많다
찾아보면 넘친다
그런데,꼭 소통이 목적은 아니지만,그냥 혼자 주절주절 하는 것
누군가 잠못다는 누군가가 또는 어떤 사정으로든지 우연히 들렀다가 이런? 싶은 그런 마음이어도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