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 예외도 있겠지만,눈내린 다음 날은 맑아서 도까운 햇살이 가득했다.
눈내린 다음날 다리밑 거렁뱅이들이 빨래를 한다고 하는 말을 매번 눈온 다음날이면 떠오른다.
그러한 말의 이력을 좇을 어른들이 다 사라지기전 보다 많은 사연을 들어 둘 터이지만,추운날은 바깥 출입을 걷고 조용히 들앉는게 상책이다.
겨울이 추워야 하고 여름은 더워야 한다는 자연의 이치가 뒤틀려 겨울에도 봄꽃을 보는 것이 이제 의외의 소식도 아닌듯 하여
자못 걱정스럽다.설이 가까워올수록 마음이 무겁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그저 평범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 성격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오라버니가 있을 때에도 음식수발은 내몫이었지만,아예 오라버니가 없는 지금에는 명절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마지막 명절을 보내고,아버지 기일을 함께 보낸 밤.설거지 끝낸 나를 데려다 준 것도 무거운 그가 하는 말없는 표현 이었다는 것을 안다.
형제간에도 무엇을 요구하는 것에는 영 마뜩찮은 내 성격으로는 부탁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좀체 부탁하는 법이 없었건만
오라버니께 부탁해 억지로 얻었던 워커맨 미니 시디플레이어는 이제 더이상 효용이 없다.
한때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것을 오라버니가 사주었지만,구형이었고,나는 나중에 내 힘으로 기어이 그 필요 없는 것을 사들였다.
전설적인 물건들,작동되는지조차 잊었다.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시절이라,그러한 기기는 이제 한켠에 먼지를 쓰고 잠자고 있다.
오라버니가 남긴 전화기로 라디오도 듣고 사진도 찍었다.그리고,인터넷을 하게되면서 열린 세상을 살게 하기를 바랬을까.
답답한 내성격,오래 격리되었던 나를 염려하였던 그가 여전히 나를 답답하게 여길 터이지만,그의 신형 스마트폰이 물러나고 누군가의
교체된 스마트폰이 다시 한 걸음 더 올라선 인터넷의 활용을 가능케 했지만,기껏 내가 쓰는 것이란,여전히 오래 들어온 라디오 가끔
가보지 못한 섬의 생생한 소리를 듣보는 것이 기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