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마도 식목일인데다 전국에서 산불이 유난했던 바람불던 날이었다.
내게 무얼 얻기위해 그런 제의를 했는지도 모른채.아주 훗날 것도 최근에야 그곳에 그런이름이 상호로
쓰이는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그날은 천생연분의 천생이라 생각했었다.
천생다방이라는 지하에서 만나기도 했고,
내가 버슬 몇번이나 갈아타고 낯선도로를 가로질러 돌담이 있는 그집에 닿았을때 늙은 아버지는 내이름을 기억해주셨다
무르춤하고 어색한 저녁,나더러 저녁을 지어보라 하는 그의 말을 받들어 낯선 부엌을 뒤져 찾은건 무 반토막이었다.
요리라고도 그렇다고 무얼 할 나이가 아니라고만 여겼다.
그때 이미 늦은나이였지만,결혼하여 아이를 둔 또래와 비해 나는 늘 어리다고만 여겼었기에
내가 무얼 한다는건 참 어울리지 않는일이었다.
내가 먹어본 반찬의 기억으로 무채를 썰고 채나물을 만들고 나머지는 무국을 끓였다
그리고 가져간 참치로 김치찌개를 올렸던것같다
늙은 아버지께선 반주로 냉장고에서 먹다남은 병맥주를 하나 꺼내셨는데 마개가 달아난 주둥이를
종이로 막아놓으셨던게 귀엽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한참훗날이 된 지금은 그분들이 얼마나 날 욕했을까.우리부모님을 흉보셨을까.그생각을 한다.
인연이되지 못한 버려진 인연이지만,그것이 지금껏 내겐 엄청난 분노로 남아있는데.
다 부질없다.잠자리를 잡겠다고 어릴적의 우린 연못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잠자리꽁꽁 붙은자리 붙어라.
잠자리 사진을 올린 블로그에 댓글을 누군가 그렇게 올렸다.요요 붙어라 해서 붙는사람 있으면 좋겠다고,
그사람이 와 붙어주길 바란다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