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먼저 만나려면 남쪽으로 가면 꽃의 시기를 빨리 느낄 수 있고
천천히 맞으려면 강원이나 경북의 북부 강원도의 접경지역을 가면 가능하다
영양의 산골도 더디 오는 봄을 맞을 수 있겠지만,이제 계절마저 점점 제 빛을 잃고 속도를 버린지 오래
동시다발의 꽃과 잎을 보는 것 같다
보호수 라고만 되어 있지 무슨나무 이며 어떤 경로로 보호하고 있는지 사연을 모른 채 달랑 보호수라는 어설픈 팻말이 하나 서 있는 길
백천계곡으로 드는 입구에 더 유명한 절집의 돌비가 어마무시하게 서 있었다
계곡이 궁금하여 들어가보니 꽤 으슥한 길이며 한갓진 길이었다 남쪽에선 이미 잎의 시기를 맞은 벚나무가 계곡 안쪽에서 이제 막 꽃의 절정을 보는 중이어서 놀란 적도 있다
열목어가 돌아온다는 곳.그렇지만,계곡안 절집은 그냥 절이 아닌듯 어차피 무로 돌아가게 하려면 자연에서 흩어지게 하는 것이 맞지 납골당이니 수목장이니 하는 것도 살아있는 자들의 욕망이 진행중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도 결정권이 없이 오직 내 결정만 바라보던 언니들.그리고 당시엔 오빠도 있었건만
세상에 날 내놓으신 아버지는 경제력이 없고,평생 늙으신 아버지와 일하는 엄마만 봤던 탓에 아버질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아버지와 함께 밥 짓던 저녁과 노쇠로 하여 어린딸의 언어적 패악마저 맞서지 못하는 종이호랑이 시절의 아버지에 대해 아프게 기억하면서도ㅡ 작은아버지와 지관이 파묘를 결정하여 어머니의 장례일정을 잡을 때,아버지 묘를 파묘하는 일정 때문에 어머니의 장례일정이 당겨지고,그래서 이틀장으로 맺게 한 것이 어쩌면 지금도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가장 큰 시혜일까 생각하곤 한다.하루를 줄여주신 덕에 막막했던 장례식장의 비용을 절감하고,여러가족이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으니
뜨거운 여름장례를 줄여주신 것이 아버지의 배려처럼 여전히 기억된다
그래서,부모님을 호젓한 산길에 흩었고,이어 오빠를 그렇게 또 흩어버렸지만,명절이나,어버이날이면 찾아가곤 한다
술 한잔 산길에 따르고,오빠를 흩어버린 나무아래서 절하고 돌아오는 서러운 날들이 오직 나혼자 만의 일이다
이제 늙은 언니들이 그곳을 갈 리가 없고,오직 나만 아는 곳이라,제사를 지내는 것도 묘소가 아닌 곳에서 흩어진 영혼들을 기억하는 일도 내게서 끝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