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누군가 반짝이게 닦았을 항아리들이 이제 할 일 다했다는 자세로 물구나무 섰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지만,그래도 낫다
이렇게 따뜻한 담벼락에 기대어 속을 감추었으니
할매네 모자가 이 가난한 마을로 이사를 온지도 어언 십년쯤? 이집을 어떻게 사고 어떤 곳에서 이곳으로 살러 왔는지 모르나,낯선 마을에 이사온 할매의 아들은 드문드문 드나들고 할매는 마실도 가지 않고 들앉아 지내는듯 보였다
가끔 지나다 나도 얻었던 호박이나 또 마실것 먹을 것을 나눠드리면 고맙다시던 기억이 난다
어느해부턴가 이 올망졸망한 항아리들이 주인을 잃고 드물게 들고나던 아들도 발길이 뜸해져 을씨는스런 길갓집
항아리들이 풀에 먹히는 중이다.
매번 이런 장독대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내 어머니의 항아리들이 있다
한때 우릴 먹였을 장들이 들앉아 어마니 살림계를 떠난지 오래,장을 모르는 나도 이제 오직 만들지도 모르는 집간장 된장만 찾는 된장녀지만,여전히 메주를 쑤고 간장을 빚는 일을 모른다
고추장도 좋아라 하지만,오래묵은 고추장이 짜장처럼 시커멓게 굳어진 항아리가 여전히 저 아래 놓여져 있지만
앞집 처마물받이가 되어 빗물이나 받아내는 중이다
늘 비가 오면,빗물이 튀겨 계단을 오르내리기 어렵다
그런 사연을 앞집언니에게 넌지시 이야기 했지만,모르쇠로 버티는 그녀는 자신은 아주 조금도 손해보지 않은 이상한 셈법을 가졌다.어머니 돌아가신 뒤 내게서 고추장을 휘젓거나 메주콩을 저어주던 길다란 나무주걱을 가져가고
아마도 무쇠 숯다리미도 가져가 딴은 어지간히 고색티를 내려 하지만
갈무리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내 친구의 개구장이 아들이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장독대의 항아리를 보고 "단지다!" 소리치던 이유가 무엇때문인지 모른다.그렇게 단지를 좋아했는지 반짝거리는 물건이 신기했는지 모를 그 아이도 이젠 청년이 되었고,나는 항아리를 닦지 않고 올 여름을 보냈다
엄마를 대신하여 부지런히 매일 항아릴 닦는 것을 의식처럼 치루던 한때가 있었다
그리고 시골을 돌며 큰 항아리를 사들이던 장사꾼들이 있었다.내게 몇번이나 큰 항아리를 팔라고 했지만,엄마는 그 큰 항아리를 읍내 옹기전에서 머리에 이고 오느라 짱배기(정수리)가 벗겨지는 줄 알았다던 말씀을 기억하기도 하고
나도 워낙 항아리가 좋다보니 얼른 그 큰 독을 이사하여 거실로 들였다
지금은 마른 것들은 그 큰 독으로 들어간다